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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1. 21世 〉7. <부정공>제족제참봉초은공휘병기문(祭族弟參奉憔隱公諱炳箕文)
1. 문헌 목록 〉21. 21世 〉9. <부정공>동강공휘기호행장(東岡公諱基昊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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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정공>참봉초은공휘병기묘갈명(參奉樵隱公諱炳箕墓碣銘)
參奉樵隱公諱炳箕墓碣銘 湖左昇州郡有樵隱趙公諱炳箕字殷三篤學力行士也得年六十八觀化于 裕陵後癸未四月四日葬後十五禩嗣子弼坤具公免親龜村居士炳寬氏所纂狀徵余文圖不朽余辭非其人而請益力按龜村公吾同門耆德也其言固不誣而狀謂公與龜村同學于尹兩獨申農山二賢門有壎箎諧뱘澤山相涵之懿俱負南中雅望是可以知公矣公爲人慤謹績學勤苦十四五上學兩獨公公才不長於誦習而尋思惟勤意義頗能曉解弱冠餘就正農山公公詡以共學其書曰此學在實不在言曰不輟尋數殷三外復有幾人又見公學之勤也公少貧甚不能專心讀書如採薪負米梱屨織席靡不身親鄙細艱險萬端而事親不乏滋味安其寢處友弟互縫舂及沒敎育孤姪嫁娶無異己出於從伯公沒而世父母在堂孤姪幼三從兄夭而再從祖母在堂二孤幼亦一心燾恤敎導有所成立使從祖母與世父母獲享天年喪葬無憾每當兩家諱日雖夏月秧麥奔忙困瘁必率子侄往參祀事推之宗族黨如臨産而乏炊嫁娶而失時與喪葬無備者竭力周急俾免困窒水火患難又匍匐相仗靡間親疎謹守宗財先䂓增置祭田賁飾石儀購經史成書橱以公宗中使子弟有學摭取家先懿行篤狀若傳使子孫服習仰法與龜村公跋涉半千打同春翁碑本移摹先碣農山諱辰課年具隻鷄香課修事一之誠公以曾傳一部爲終身家計不以老病或倦臨終猶展在側轉輾呻囈公之先譜丘麗侍中諱璋累傳諱元吉封玉川府院君諡忠獻生諱瑜號虔谷農副正學問節義議世師表罔僕于 國朝生諱斯文司正 贈吏議生諱智崑井邑縣監著治績三傳諱大承監泰仁亦著績公其十一世孫也高祖曰廷直 贈司僕正曾祖曰贄祥 贈承旨祖曰永舜考曰星根號湖軒有文行妣曰姜氏籍晋州圭會其外祖齊曰宜人申氏籍平山泰璿其外舅乙亥五月二十二日生丁亥二月十九日卒 洪陵丙子公之生也郡之住巖坊蚌澤山乙坐原公與配之藏也育二男一女即弼坤瑄坤星州裵錫棟妻休文休千陽川許基祚金海金學來金海金載洙星山李護燮南原梁海萬濟州梁晢鎬妻長房出休明次房出裵婿男又四人曾孫炯容凡容休文男珍容忠容休千男槿容邦容休明男吁公之得乎天者固粹美而其行業之懇勤敦茂學問之力亦不可誣也是可以銘其銘曰 孝爲行本推二及物鄕猶恩浹況于親戚承先裕後又復衷血本之維何曾傳其讀我詩載石爲百世則 安東 權純命 撰 참봉초은공휘병기묘갈명(參奉樵隱公諱炳箕墓碣銘) 호남좌도 승주군에 초은 조공 휘 병기 자는 은삼이 학문에 독실하여 힘써 행한 선비가 되어 향년 六十八세로 순종(純宗) 계미년(癸未年一九四三) 四월 四일에 별세하였다。 장사한 후 十五년에 사자 필곤이 공의 면친 귀촌거사 병관(炳寬)씨가 지은 장문을 보이며 나에게 글을 받아 영구히 전하고자 함으로 내가 자격이 없다고 사양하였으나 청이 더욱 근실하였으므로 안찰하니 귀촌공은 나의 동문 장덕이라 그 말이 진실로 속임이 없고 장문에 이르되 공이 귀촌공과 함께 윤 양독(尹兩獨)과 신 농산(申農山) 두 현인의 문하에서 배워 서로 화합하여 많이 서로 함양한 아름다운 자취가 있어 함께 남중에 큰 촉망을 졌으니 이것으로 가히 공을 알겠도다。 공은 사람됨이 정성스럽고 삼가하여 학문을 배우되 근고하더니 十四〜十五세에 양독공에게 상학하였다。 공의 재주가 읽고 익히는데 지나지 아니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부지런히 하여 자못 능히 해득하였다。 三十세가 넘어 농산공에게 나아가 바로 잡으니 공이 공학을 장려하며 그 글에 말하기를 『학문은 실지에 있지 말에 있지 않다。』 하고 가로되 『수를 세지 않고 읽기만 한 자 은삼 외에 몇사람이나 있는가』 하였으니 또 공의 배움에 부지런함을 보겠도다。 공이 젊어서는 심히 가난하여 능히 마음을 오로지 하여 글을 읽지 못하고 나무하고 쌀을 지며 신삼고 자리 짜기를 몸소 아니한 것이 없고 만단으로 간고하고 비세하여도 어버이 섬기며 자양이 있는 반찬을 떨어뜨리지 않고 그 침소를 편안히 하며 아우와 우애하여 꿰매기와 절구지를 함께 하드니 죽음에 외로운 조카를 가르치고 시집보내며 장가드리기를 내 자식과 다름이 없이 하였다。 종백공이 졸하고 생부모가 집에 계시며 외로운 조카가 어리고 三종형이 일찍 죽어 재종 조모가 집에 계시며 두 외로운 어린이가 있어 또한 마음으로 규휼하고 가르쳐 성립하게 하고 종조모 및 세부모로 하여금 천년을 누리게 하였으며 초상 장사에 유감이 없이하고 항상 두 집 기일을 당하면 비록 여름에 이종하고 타맥할 때 분망하고 피곤하더라도 자질을 거느리고 가서 제사 참사하고 그 일을 종족과 향당에 미루어 만일 산월에 불을 사르지 못하거나 혼인을 실시하며 초상 장사에 준비가 없는 자를 힘을 다하여 구제하여 곤란을 면하게 하고 수화 환란에 친불친이 없이 보조를 후하게 하였다。 삼가 종재를 지켜 제전을 더 장만하고 석물을 크게 꾸미며 경사를 사서 서고를 만들어 자제로 하여금 배우게 하고 선조의 아름다운 사행을 가려 취하여 자손으로 하여금 복습하게 하였다。 귀촌공과 더불어 五백리 길을 걸어 동춘비본(同春碑本)을 모사하여 선갈에 이모하고 농산휘신에 해마다 닭 한마리와 기타 과일을 갖추어 사일의 정성을 닦았다。 공이 효경 一부로서 종시 법칙을 삼아 노병으로서 게을리 아니하고 임종에 오히려 펴서 뒤적거리며 신음하고 헛소리하였다。 공의 선계는 고려 시중 휘 장(璋)을 비조로 하고 있다。 三전하여 원길(元吉)은 훈봉이 옥천부원군에 시호는 충헌이요、 생휘 유(瑜)의 호는 건곡이고 전농시 부정으로 학문과 절의가 세상에 사표인데 국조에 이름을 숨기었다。 생휘 사문(斯文)은 사정으로 이조참의를 징직받았으며 생휘 지곤(智崑)은 정읍 현감으로 치적이 저명하였다。 三전하여 휘 대승(大承)은 태인에 출재하여 치적이 혁혁하니 공은 그 十一세손 이었다。 고조는 정직인데 증 사복시정이요、 증조는 지상(贄祥)인데 증 승지며、 조는 영순이요、 고는 성근(星根)인데 호는 호언이요、 문행이 있었다。 비는 진주 강씨(晋州姜氏) 규회(圭會)의 따님이요、 부인은 의인(宜人) 평산신씨(平山申氏) 태선(泰璿)의 따님으로 을해년(乙亥년) 五월 二十二일에 출생하여 정해년(丁亥年) 二월 十九일에 졸하였는데 고종(高宗) 병자년(丙子年一八七六)은 공의 생년이었다。 군의 주암방 을좌원(蚌澤山乙坐原)은 공과 부이의 유택이다。 아들은 필곤(弼坤)·선곤(瑄坤)이요 딸은 성주(星主) 배 석동(裵錫棟)처이며 휴문(休文)·휴천(休千)과 양천(陽川) 허 기조(許基祚)·김해(金海) 김 학래(金學來)·김해(金海) 김 재수(金載洙)·성산(星山) 이 호섭(李護燮)·남원(南原) 양 해만(梁海萬)·제주(濟州) 양 석호(梁晢鎬)의 처는 큰아들 소생이요、 휴명(休明)은 둘째아들 소생이며 증손 형용(炯容)·범용(凡容)은 휴문의 아들이요 진용(珍容)·충용(忠容)은 휴천의 아들이요、 근용(槿容)·방용(邦容)은 휴명의 아들이다。 아、 공은 하늘에서 얻은 자로서 진실로 맑고 아름다우며 그 행업의 간근하고 돈무함이 학문의 힘을 가히 속이지 못하겠으니 이에 명을 지어 새긴다。 효도는 행실의 근본이 되는 것이니 미루어 다른 곳에 미치는 것이다 孝爲行本 推二及物 고을에 오히려 은혜가 사무쳤으니 하물며 친척일 것인가 鄕猶恩浹 況于親戚 선업을 계승하여 후손을 넉넉하게 하였고、 또다시 정성스럽고 씩씩하였다。 承先裕後 又復衷血 어디다가 뿌리하였는가 효경을 읽었다。 本之維何 曾傳其讀 내 글을 돌에 실어 백세의 법칙이 되리라 我詩載石 爲百世則 안동(安東) 권순명(權純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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